텔아비브 (Tel Aviv)
텔아비브는 히브리어로 봄의 언덕을 뜻하며 이 명칭은 나훔 소콜로프가 테오도르 헤르츨이 쓴 《오래 된 새로운 땅》을 히브리어로 번역했을 때 지어준 제목이기도 하다. 이 명칭은 고대 이스라엘의 파괴를 상징하는 동시에 재탄생을 갈망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소콜로프는 에제키엘 3장 15절에서 이름을 얻었다. ("나는 내 겨레가 사로잡혀 와서 살고 있는 그발 강 가 텔아비브에 이르렀다. 나는 얼빠진 사람이 되어 칠 일간 그들 가운데 앉아 있었다.")
1909년 유대인 가족들이 아랍 원주민들에게서 땅을 샀을 당시 야파를 대처 할곳으로 지어졌다. 제1차 세계 대전당시 터키군에 의해서 유대인들은 야파와 텔아비브에서 쫓겨났지만 영국이 팔레스타인을 통치하기 시작 할 때 다시 돌아왔다. 1920년대 팔레스타인으로 오는 유대인 이주자들이 늘어나면서 아랍인들과의 관계가 소원해지기 시작했다. 결과로 유대인들은 야파를 떠났고 텔아비브의 인구는 서서히 늘어났다.
제1차 중동 전쟁이 시작되기 수 일 전 야파에 있던 아랍군이 텔아비브를 공격했으나 이스라엘이 독립 선언하기 이틀 전 다시 도시를 되찾을 수 있었다. 전쟁당시 요르단이 예루살렘을 점령하여 텔아비브는 이스라엘의 임시수도가 되었다. 전쟁전 야파는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아랍인들이 가장 많은 도시였다. 대략 7만 명 내지 8만 명의 아랍인들이 존재했으나 유대인 민병이었던 이르군과 하가나가 침입해서 오직 4천 명만 야파에 남았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중동 국가와의 관계로 인하여 대부분의 국가는 수도인 예루살렘 대신 텔아비브에 주 이스라엘 대사관을 두고 있다.
건축상으로 텔아비브는 193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 건설된 화이트 시티로 잘 알려져 있다. 하얗고 밝은 색상의 건물들이 많아서 화이트 시티로 불린다. 나치 독일을 탈출한 건축가들이 모던주의의 영향을 받아 건물들을 전부 바우하우스식이나 국제주의식으로 지었다. 2003년 유네스코가 세계 유산으로 지정했다. 1960년대 급속도로 늘어났던 이민자들을 위해 지어진 낡은 건물들이 자취를 감추면서 초고층빌딩의 숫자는 더욱더 늘어나고 있다. 국제적으로 잘 알려진 마천루는 샬롬 타워와 아즈리엘리 센터 등이 있다.
지도 - 텔아비브 (Tel Aviv)
나라 - 이스라엘
이스라엘의 국기 |
1947년 11월 29일, 유엔 총회가 영국의 위임 통치를 받던 팔레스타인의 강제적인 분할 계획을 채택하여 실행을 추진하였으나, 이에 동의한 유대인과 달리, 이에 동의하지 않은 아랍인은 추후 이스라엘을 침공하게 된다. 1948년 5월 14일, 세계 시오니즘 단체 경영이사, 그리고 팔레스타인 유대인 기구의 대통령 다비드 벤 구리온은 "에레츠 이스라엘에서 유대 국가를 수립하고 이스라엘 국가로 한다"고 선언했다.
통화 / 언어
ISO | 통화 | 상징 | 유효숫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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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S | 이스라엘 신 셰켈 (Israeli new shekel) | ₪ | 2 |